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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퀘스트

[컨퀘스트/단편 소설] 네펜데 1부 - 대가(The Price) -2-

by 드렁큰미니어처 2024. 4. 30.

본 번역은 제가 진행한 것이 아니며, 미니어처 마이너 갤러리 august21 님의 번역을 기반으로 일부 용어를 통일하고 문장 중 일부를 수정한 것입니다.

 

 

 


"앞으로, 전진!"

 

어디로 가는 건데? 헌프리드는 궁금했다.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투구는 방해만 됐다.

허나 '무기를 들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대열은 보다 촘촘해졌으며, 이젠 앞으로 가랍신다.

융거의 석궁병들에게도 명령이 내려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마도 헌프리드의 부대는 그들의 오른편에서 걷고 있는듯 했다.

 

그러니, 궁금해 해야할 것은 '어디로'가 아니었다.

짙은 진주빛 안개 속 어딘가에 뭔가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즉, 물어봐야할 질문은... 무엇을 향해 가는 건데?

 

헌프리드는 처음 그것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그냥 또다른 동물이겠거니 했으나 그 울음소리는 새로웠다.

그리고, 그는 울음소리가 원래 여럿이었거나, 또는 첫 울음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축축한 것이 주르륵 흐르는 소리, 뼈끼리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이상한 딱딱거리는 소리가 안개를 뚫고 그의 귀에 닿았다.

 

헌프리드는 몸이 떨리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느낌을 받은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의 모두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로의 얼굴에서 답을 찾고자 했으나 누구도 이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것들은 안개 속에서 그림자같은 형체로 보였기에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이 점차 그 생물체들에 가까워지고 안개가 조금 걷히자 괴물들의 모습은 그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것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줄줄이 늘어서 있는 그 생물체들은 노인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서있었고, 한손에는 원시적인 짧은 창을 들고, 반대손에 든 긴 방패에 몸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헌프리드는 이 생물체들이 하얀 뼈로 만들어진 가면 형태의 투구 속에서 이를 딱딱거리며 으르렁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부대의 맨앞줄이 물보라와 함께 얕은 물가 속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헌프리드의 우측열 6인중 한 명이 피식 웃었다.

 

"저게 그 무시무시한 첨탑군주들이라고? 원시시대의 노파같-..."

 

안개를 뚫고 날아든 화살이 남자의 목을 관통하자, 그의 마지막 말은 이내 처절한 신음으로 변했다.

잠시 후, 우측 측면에서 화살비가 쏟아져 내리며 병사들이 쓰러졌고 고통과 경고의 외침이 일자 따로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방패들이 뒤따랐다.

몇 분 지나지않아 두번째 일제사격이 쏟아졌다.

헌프리드는 우측열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지휘관이 전선을 사수하라 소리쳤다.

 

그들과 돌격해오는 등 굽은 창병들 사이 어딘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함성을 외치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것들의 낮은 으르렁거림과 이빨을 딱딱거릴 뿐인 돌격은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리스마크 장병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헤르마크 대장이 대열에 합류하며 돌격을 받아낼 자세를 취하라 명령했다.

왼편에서 융거의 석궁병들이 첫번째 일제사격을 쏜 것은 이미 첨탑 궁수들의 세번째 사격이 또 한번 보병들의 오른쪽 측면에 떨어진 뒤였다.

멀리서 당황한 목소리로 팔이 세개라는 둥 횡설수설하는 것이 메아리쳤다.

헌프리드는 투구 속에서 자신의 다리 떠는 소리를 들으며, 검을 뽑아들고 충돌에 대비했다.

 

허나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의 발 아래 땅이 뒤흔들리며, 수백 파운드의 육체들과 강철이 그들의 왼쪽에서 안개를 뚫고 돌진해왔다.

또다른 연기가 피어오르자, 창병들은 일제히 멈추더니 기사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창과 방패를 들어 돌격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재빨랐다.

 

모래성을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처럼, 그것들의 전열을 돌파한 기사들은 방패벽을 부수고, 꿰뚫고, 짓밟으며 리스마크를 위하여 포효했다.

프레드릭의 투구 위에 씌워진 관이 금빛으로 빛났고, 기병창을 놓고 검을 뽑은 그가 매 일격을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내리치자 칼날이 뼈 갑옷을 박살내고 살점 비슷한 것을 꿰뚫었다.

 

공포가 창병들 사이에 퍼지자 그것들 중 일부가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또다른 녹색 연기가 그쪽 전열에서 뿜어져 나왔다.

헤르마크 대장이 적 측면으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헌프리드는 겁에 질린 창병들이 투구 속의 눈을 크게 뜬 채 패닉에 빠져 싸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얼어붙은 다리에 돌격하라고 명령하는 사이, 헌프리드는 왕세자도 자신과 같은 것에 눈치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사들의 엄호를 받으며, 프레드릭은 연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검을 멈추었다.

잠시 후, 그는 검을 내려 창병들 속의 누군가를 가리켰다.

헌프리드는 그게 누굴 가리키는 건지 보지 못한 채, 눈 앞에 펼쳐진 싸움으로 관심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중장보병과 창병이 충돌하며 서로의 방패가 맞닿았다.

자신의 방패와 뒷사람의 방패 사이에 끼인 헌프리드는 좋든 싫든 간에 앞사람을 밀 수 밖에 없었다.

 

"기사님들을 따라라! 기사님들을 따라 놈들을 밀어내!"

누군가가 외쳤고, 울릭 또한 소리쳤다.

"머리 낮춰! 창 조심해! 다리랑 어깨를 써라, 이 잡종들아! 밀어!"

 

뒤에서는 수십 명의 병사들이 압박하고, 앞에서는 그에 맞서 버티는 사이에서 헌프리드는 온 몸의 뼈가 부숴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숨을 내뱉었다.

헌프리드는 분명 중장보병들이 밀어내고 있음에도 이 허리 굽은 노파같은 녀석들이 잘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울릭의 충고대로, 어깨로 방패를 미는 동안 머리를 숙여 그 뒤로 숨기고 있었다.

허나 앞에서 네번째 줄이니 안전할 거라 여기고, 방패 너머를 올려다 본 순간...

 

그가 간신히 피한 덕에, 창날은 투구의 관자놀이 부근에 부딪쳤다.

철로 만든 투구가 조금은 버텨주었지만 그 타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머릿속을 마비시키는 듯한 울림에, 순간적으로 무릎에 힘이 풀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공포의 쓴맛이 그의 입 안을 가득 채웠고, 그저 멍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압력에 의존해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 신이시여, 그는 이제 앞에서 두번째 줄이 되어 있었다!

 

"머리 숙여!"

잉가는 거의 화를 내며 경고했다.

 

"그리고 검을 써라, 신참, 검!"

울릭이 말을 이었다.

 

헌프리드는 집중하려고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땀보다 끈적이는 것이 오른쪽 뺨을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검을 꽉 쥐고 방패벽 사이로 찔러 넣을 준비를 했지만, 그 순간 앞줄이 무너졌다.

그 변화에 놀란 헌프리드는 눈 앞에 동료대신 여전히 혼란에 빠진 창병 중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창을 쓰기에 너무 가깝자 첨탑졸개(spireling)는 눈 앞의 신병을 밀쳐내려 했지만, 사관학교에서의 훈련이 성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창병에게 달려들어 상대의 방패에 자신의 방패를 대고 무게를 실었고, 뒤에 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버틸 수 있었다.

자신과 첨탑졸개의 방패 뒤에 몸을 숨긴 헌프리드는 콧구멍 속을 가득 채우는 연금술의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역겨움을 느낀 헌프리드는 칼의 짧은 사거리를 무기로 적을 맹목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헌프리드가 한 번, 두 번, 세 번을 찌르자, 창병은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그에겐 그럴 만한 공간도 힘도 없었다. 

 

세번의 찌르기 모두, 검은 뼈 갑옷에 부딪치며 소름끼치는 느낌을 주었지만 관통하지는 못한 채 긁어놨을 뿐이었다.

네번째는 운이 좋았다.

창병이 창으로 찌르려고 팔을 뒤로 당긴 찰나, 헌프리드의 칼날이 놈의 어깨 아래로 미끄러지며 겨드랑이를 꿰뚫었다.

그 생명체는 고통 속에서 컥컥대다 쓰러졌고, 전투가 진행되면서 인간과 첨탑졸개 모두에게 짓밟혔다.

또다시 측면과 후방에서 두 차례의 화살비가 쏟아지며 대혼란을 일으키자, 더 많은 단말마가 혼돈 속을 뚫고 들려왔다.

 

"망할 융거네는 뭘 하는거야?!"

한 병사가 헌프리드의 옆에서 성을 냈다.

"우리가 두 세 발씩 쳐맞을 동안 한 발도 못쏘고 있잖아!"

 

적어도 눈 앞의 창병들은 거의 절반이 죽거나 다치며 무너지고 있었다.

방금까지는, 그래보였다.

 

그는 방패든 팔이 두동강나고 발목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너덜너덜한 첨탑졸개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의 부서진 투구 사이로 보이는 한쪽 눈은 마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는 듯 당혹감에 미쳐 날뛰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것은 일어나 창을 쥐었고, 주어진 명령에 따라 부러진 팔로 방패를 들어 올리려고 발악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다른 첨탑졸개들도 상처와 부상을 무시하며 똑같이 행동했다.

서너줄의 창병들이 줄지어 서자, 연기가 사라졌다.

 

주위에서 마법이라며 겁에 질려 소리칠때, 헌프리드는 왕세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를 따르라! 보병들이여! 밀어내라! 그대들의 왕자를 따르라!"

 

울릭이 헌프리드를 옆으로 밀치고 앞장서서 창병들을 방패로 밀어내기 시작하자, 헌프리드도 전선을 살피며 울릭을 뒤따라 적들을 밀어내는 것을 도왔다.

왕세자의 명령에 네 명의 기사가 포효하며 박차를 가해, 차례대로 검을 휘두르며 전열을 열어젖혔다.

창이 한 군마의 목을 꿰뚫자, 말과 기사 모두 금속이 철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거꾸러졌다.

나머지 기사들은 한 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죽음을 선사하며 길을 열었다.

 

그리고 불현듯, 헌프리드는 군중 속에서 그 자를 보았다.

그 자의 로브는 안개와 같은 진주색에, 검정과 보라색 판 위로 희미한 무지개 빛깔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자가 괴물인 줄 알았다.

이상한 마스크에는 굵은 줄기 혹은 촉수같은 것이 자라나 있었고, 죽은 눈에, 벨트 옆에 달린 두터운 가방과 구멍뚫린 바지는 살아있는 것 마냥 꿀럭이며 거품이 이는 소리를 냈다.

그 자의 등에 돋아나 있는 속이 빈 두개의 뿔에서는 연기가 계속 흘러나왔고 때때로 폭발하듯 뿜어내며 구름처럼 그 자의 주위로 퍼졌다.

알코올과 유황 냄새가 중장보병들의 콧속까지 도달하자 몇몇은 그 악취에 구역질이 올라왔으나 여전히 전열을 유지한 채 밀어내고 있었다.

프레드릭이 포효했고, 그와 기사들이 그 로브 걸친 형체를 향해 나아갔다.

왕세자는 그것을 향해 검을 치켜 들었고, 검은 죽음 그 자체인 것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 고요함이 단순히 겉모습 뿐인게 아니라는 것을, 헌프리드는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가까워지자 프레드릭은 그 생물체의 가면 아래의 눈이 패닉에 빠진 게 아니라 무언가를 살피는, 어쩌면 계산 중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중장보병들이 그 자의 퇴로를 차단하자 그 자의 등에 달린 뿔처럼 생긴 연장부에서 가스가 터져 나왔다.

공중으로 높이 퍼져나간 가스는 수십 피트에 도달하자 역겨운 녹색으로 변했다.

창병들은 그 자의 주위에 공간을 터주었으나 여전히 근처로 다가오는 병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휴식의 기회를 잡은 헌프리드는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부대들은 조금 더 북쪽에서 규칙적으로 화살비를 맞으며 창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네가 왕인가?"

프레드릭은 무뎌진 검을 내던진 후,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옆으로 손을 뻗은 채 소리쳤다.

로브를 걸친 형체가 고개를 가로 젓는 사이, 한 기사가 자신의 검을 왕세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화학적 변종으로 식별되지 않소."

그 자의 말투는 헌프리드가 들어본 것 중 가장 느리고 잔잔했으며 텔리안 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는 튜브가 달린 마스크 아래에서 메아리쳤다.

 

"악마같은 연금술사여! 네가 왕인가?"

"이미 공인했듯, 부정하오. 귀하가 언급한 연금술사는 화학적 변종과 동일하오."

"동일하다고?"

"같다는 뜻이오."

 

첨탑군주는 아이에게 설명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두 명칭은 동일하오. 둘 다 같은 개인을 지칭하오."

"그 자에게 전할 말이 있다."

"직접 전달해야 할 것이오, 인간종의 왕자여."

첨탑군주가 말했으나 왕세자는 무시하며 손에 든 검의 무게를 재는듯 휘둘렀다.

 

"왕족의 이점중 하나는, 내 말을 먼저 전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지."

프레드릭은 첨탑군주의 몸통에 검을 박아넣고 강하게 밀쳐내며 반대손으로는 칼자루 끝부분을 밀었다.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왕세자는 장교들에게 북쪽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